이회창 근황 한인옥 여사 별세
- 이회창 근황
이회창 근황 한인옥 여사 별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부인 한인옥 여사를 떠나보내며 정치권 안팎의 애도를 받고 있다. 한인옥 여사는 지난 23일 향년 88세로 별세했고,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최근까지 공개 활동이 많지 않았던 이회창 전 총재는 고령의 나이에도 시국 관련 메시지를 간간이 내며 근황을 전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60년 넘게 곁을 지켜온 배우자의 별세로 큰 슬픔에 잠긴 모습이다. 정치권 인사들의 조문도 이어지고 있으며, 한 시대 보수 정치의 상징적 부부였던 두 사람의 긴 동행이 마침표를 찍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회창 프로필


- 이름 : 이회창
- 나이 : 1935년 6월 2일생(90세)
- 고향 : 황해도 서흥군
- 학력 :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 가족 : 배우자 한인옥 여사, 2남 1녀
- 경력 : 대법관·감사원장·국무총리·한나라당 총재·자유선진당 총재
- 종교 : 천주교



이회창 전 총재는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보수 정치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법관 시절 원칙과 소신을 강조하며 ‘대쪽 판사’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후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거치며 국민적 인지도를 쌓았다.
법조인에서 정치인으로


이회창 전 총재는 1957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뒤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이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와 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사법부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맡으며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정치 입문 이후에는 신한국당 대표위원과 한나라당 총재를 지내며 보수 진영의 중심축으로 떠올랐다. 또한 자유선진당 창당과 국회의원 활동 등으로 충청권 정치 재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한나라당 총재 시절


이회창 전 총재는 1997년 신한국당과 민주당계 일부 세력이 합쳐져 한나라당이 출범한 이후 보수 진영의 간판 정치인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높은 지지율과 안정적인 이미지 덕분에 ‘어대창’, 즉 “어차피 대통령은 이회창”이라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강한 원칙주의와 청렴한 이미지를 앞세워 중장년층과 보수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한나라당을 전국 정당으로 성장시키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다만 엄격하고 다소 딱딱한 이미지가 대중 친화력 부족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함께 따라다녔다.
세 번의 대선 도전과 아쉬운 낙선


이회창 전 총재는 1997년, 2002년, 2007년까지 모두 세 차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끝내 청와대 입성에는 실패했다. 1997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후보에게 근소한 차로 패했고, 당시 이인제 후보의 독자 출마로 보수 표가 분산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와 접전을 벌였지만 아들 병역 문제 논란 등이 악재로 작용하며 다시 고배를 마셨다. 2007년에는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해 15%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보였지만 이명박 후보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결국 이회창 전 총재는 ‘대통령 빼고 다 해본 정치인’이라는 상징적 별칭을 남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