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 연쇄 독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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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 연쇄 독살 사건


1980년대 후반 서울은 연쇄살인이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절이었다. 범죄는 대부분 우발적이거나 원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졌고, 가족과 이웃을 상대로 한 계획적 독살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1986년부터 1988년 사이, 서울 곳곳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돌연사가 반복됐다. 목욕탕에서, 시내버스에서, 다방에서 사람들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당시 의사들은 심장마비나 급성 쇼크로 판단했고, 사건은 그렇게 묻혀 가는 듯했다. 하지만 사망자들 주변에는 늘 한 여성이 있었다. 바로 김선자였다. 김선자는 카바레와 도박에 빠져 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거액의 돈을 빌린 뒤 이를 갚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빚을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김선자는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을 하나둘 제거하기 시작했다. 사용한 수법은 청산가리였다. 음료수나 건강음료, 율무차에 독극물을 섞어 건넨 뒤 상대가 쓰러지면 귀금속과 현금을 챙겨 사라졌다. 더욱 충격적인 건 희생자 가운데 친아버지와 여동생, 친척까지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었다.
첫 번째 희생자


1986년 10월 이웃 주민 김계환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계모임을 하던 사이였다. 김선자는 목욕탕에 가자고 제안했고, 탈의 중이던 김계환에게 음료를 건넸다. 음료를 마신 김계환은 곧바로 경련과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사망했다. 당시에는 단순 심장마비로 처리됐다. 하지만 유족들은 함께 있던 김선자가 귀금속을 가져간 점을 이상하게 여겼다. 경찰도 의심했지만 증거는 없었다.
두 번째 사건은 훨씬 대담했다


1987년 4월, 피해자 전순자는 시내버스 안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역시 김선자와 같은 계모임 회원이었고, 김선자는 전순자에게 수백만 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김선자는 영등포에서 돈을 받을 일이 있다며 동행을 권했고, 이동 중 음료를 건넸다. 이후 전순자는 버스 안에서 사망했다.


이번에는 단순 심장마비로 보기 어려웠다. 부검 결과 독극물 성분이 검출됐고, 경찰은 처음으로 연쇄 독살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수사 환경은 지금과 달랐다. 폐쇄회로 화면도 없었고, 독극물 수사 경험도 많지 않았다. 김선자는 참고인 조사만 받은 채 풀려났다.
세 번째 사건이 또 벌어졌다


1988년 2월, 김선자는 김순자라는 여성에게 접근했다. 돈을 갚겠다며 불광동으로 데려간 뒤 율무차를 건넸다. 김순자는 음료를 마신 뒤 극심한 구토를 했고, 택시 안에서도 상태가 악화됐다. 하지만 김선자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김순자는 김선자가 잠시 내린 틈을 타 택시를 출발시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훗날 이 증언은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네 번째 사건


그럼에도 김선자의 범행은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해 3월에는 아버지 김종춘이 시외버스 안에서 숨졌다. 당시 고령이었던 탓에 노환과 심장마비로 처리됐다. 시신은 화장됐고, 독살 여부는 끝내 밝혀지지 못했다.


그러나 한 달 뒤 여동생 김문자까지 비슷한 방식으로 숨지면서 상황은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버스 안에서 쓰러진 여동생을 병원으로 옮긴 청년들은 훗날 충격적인 증언을 내놨다. 병원에서 상태가 위독하다는 말을 듣자 김선자는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여동생의 가방만 챙겨 도망쳤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 사건


1988년 8월, 마지막 희생자는 김선자의 시누이 손시원이었다. 김선자는 “값싸게 집을 구해주겠다”며 손시원을 서울의 한 다방으로 불러냈다. 손시원은 수백만 원 상당의 현금과 수표를 들고 나왔고, 김선자가 건넨 드링크제를 마신 뒤 사망했다. 김선자는 그대로 돈을 챙겨 사라졌다. 이제 경찰은 확신하기 시작했다. 사망자들이 모두 김선자의 주변인이었고, 공통적으로 금전 관계가 얽혀 있었다.
김선자 검거


경찰은 결국 1988년 9월 김선자를 유력 용의자로 검거했다. 하지만 김선자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다. “증거를 대라”며 고함을 질렀고, 자신은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수사는 난관에 부딪혔다. 이미 장례가 끝난 사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유족들을 설득해 무덤을 다시 열었다.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시신 부검은 극도로 꺼려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수사팀은 강행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재부검한 시신 가운데 여러 구에서 청산염 성분이 검출됐다. 이어 김선자의 집 압수수색에서는 피해자들의 귀금속과 통장, 수표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는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됐다. 경찰 한 명이 화장실에서 우연히 목조 기둥 틈을 발견했고, 그 안에서 신문지에 싸인 청산가리 덩어리가 나온 것이다. 김선자의 친척이 화공약품 회사에서 구해준 독극물이었다.
끝까지 부인한 살인범


결국 김선자는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계획적 연쇄살인이라고 판단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었고, 범행 직후 금품이 사라졌다. 수법도 동일했다. 독극물을 음료에 섞어 건네고, 사람이 쓰러지면 현장을 빠져나오는 방식이었다. 재판부는 김선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항소와 상고도 이어졌지만 판결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김선자는 교도소 안에서도 범행을 부인했다. 자신은 억울하다고 주장했고, 일부 종교인들에게도 재심을 호소했다. 하지만 물증은 명확했다. 청산가리, 피해자들의 유품, 반복된 범행 패턴이 모두 김선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특히 친아버지와 여동생까지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은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1997년 12월 30일, 김선자는 대전교도소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실제 집행된 사형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김선자는 이런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내 죄가 있다면 가난하게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남겨진 건 돈 때문에 가족과 이웃을 독살한 한 인간의 잔혹한 흔적뿐이었다.


이 사건은 한국 범죄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여성 연쇄살인 사건 가운데 하나로 기록됐다. 총도 칼도 아닌 음료수 한 잔으로 사람을 죽였고, 가장 가까운 가족마저 범행 대상이 됐다. 무엇보다도 사건은 오랜 시간 단순 돌연사로 묻혀 있었다. 만약 재부검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김선자의 범행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