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아빠친구 김용원 연쇄살인사건 | 연쇄살인마 김용원
김용원 연쇄살인사건 개요


2005년 초여름, 충청북도 청주 일대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포에 휩싸였다. 평범한 도시의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잔혹한 방식으로 살해되는 사건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사건의 중심에는 당시 39세의 남성 김용원이 있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의 간격을 두고 이어진 살인은 충북 괴산과 청주, 진천 일대를 공포에 빠뜨렸다. 피해자는 남성 1명과 여성 3명. 범행의 방식은 잔혹했고, 그 대상은 가까운 사람들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두고 “청주판 유영철 사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짜 공포는 단순히 잔혹성 때문만이 아니었다. 김용원은 살인을 저지른 뒤에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주변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실종된 피해자를 함께 찾아다니기도 했다. 마치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1994년, 추가로 밝혀진 실제 첫번째 살인


이 연쇄살인의 시작은 사실 2005년이 아니었다. 사건의 첫 흔적은 무려 11년 전인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북 괴산의 한 당구장에서 벌어진 사소한 시비가 비극의 시작이었다. 당시 28세였던 김용원은 자신에게 반말을 했다는 이유로 27세 남성 지씨와 싸움을 벌였고, 격분한 김용원은 둔기로 상대를 폭행한 뒤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리고 시신을 농수로에 버렸다. 그러나 이 사건은 끝내 기소되지 못했다.


경찰의 수사가 좁혀오자 김용원은 놀라운 행동을 했다. 자신의 살인 혐의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들어갔던 것이다. 결국 사건은 미제로 남았고, 세상은 그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수사관들은 훗날 이 사건이 이후의 연쇄살인을 이해하는 열쇠였다고 말한다.
술자리에서 시작된 살인


2005년 3월, 청주시 사창동의 한 원룸. 김용원은 동거 중이던 내연녀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평범한 술자리였다. 그러나 작은 말다툼이 비극으로 번졌다. 내연녀가 그의 뺨을 때리자 김용원은 순간적으로 격분했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김용원은 시신을 방에 그대로 둔 채 무려 4일 동안 술을 마시며 생활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말이다. 이후 그는 고향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을 죽였다”며 시신을 함께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후배는 이를 거절하며 자수를 권했다. 결국 김용원은 혼자서 시신을 이불에 싸 차량에 싣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조용히 묻었다. 살인은 그렇게 흔적 없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추가 살인, 그리고 더욱 잔혹해진 범행


2005년 6월 3일 새벽, 청주의 한 호프집에서 또 하나의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호프집을 운영하던 여성 박씨가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처음에 강도 사건을 의심했다. 하지만 현장은 어딘가 이상했다. 돈을 노린 범행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잔혹했기 때문이다.


범인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주방에 있던 휴대용 가스버너로 피해자의 머리를 수차례 내려쳤다. 그 잔혹함은 수사관조차 눈을 돌리게 할 정도였다. 범행 후 김용원은 단지 40만 원의 수표를 훔쳐 강도 사건처럼 위장했다. 하지만 그의 폭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불과 이틀 뒤인 6월 5일, 김용원은 지인의 집에서 초등학교 6학년이던 13세 소녀를 꾀어냈다.


그리고 차로 데려가 성폭행한 뒤 “아빠에게 말하겠다”는 아이의 말에 격분해 목을 졸라 살해했다. 시신은 야산에 암매장됐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그 다음 행동이었다. 그는 다시 지인의 집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술을 마셨고, 다음 날에는 아이를 함께 찾으러 다니기까지 했다.
검거,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연쇄살인은 결국 작은 실마리 하나로 풀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피해자의 주변 인물을 조사하던 경찰은 김용원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를 알고 있던 한 후배가 충격적인 제보를 했다. 김용원이 이미 다른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던 것이다.


경찰은 그를 연쇄살인범으로 판단하고 추적에 나섰다. 도피 중이던 김용원은 청주의 한 폐가에서 은신하고 있었고, 그곳에서는 중국 도피를 준비한 흔적들이 발견됐다. 하지만 그의 도피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5년 6월 10일, 경찰은 잠복 끝에 그를 체포했다.


처음에는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지만 결국 모든 사실을 자백했다. 체포 직전 그는 중국에 있던 조선족 약혼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짧은 말을 남겼다. “그냥 나를 죽은 사람으로 생각해라. 나를 잊고 다른 사람 만나 행복하게 살아라.” 그 말은 마치 마지막 인사처럼 들렸다.


그러나 더 쓸쓸한 장면은 따로 있었다. 가족들은 면회를 거부했다. 오래전부터 연을 끊고 지내던 가족들에게 그는 이미 ‘버려진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청주를 공포에 빠뜨린 연쇄살인은 끝났지만, 수사관들의 마음에는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과연 이것이 정말 마지막 살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