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 별세 | 김영인 별세 이유
- 김영인 별세
김영인 별세

한국 액션 영화사의 한 축을 담당해 온 원로 배우 김영인이 2026년 1월 4일 오전 6시 55분께 별세했다. 향년 82세. 유족에 따르면 김영인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으며, 정확한 사망 원인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노환과 지병에 따른 자연사로 전해졌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6일 오전 7시 40분이다. 60여 년 동안 영화와 드라마 현장을 지켜온 원로배우 김영인의 사망 소식에 영화계 안팎에서는 깊은 애도의 뜻이 이어지고 있다.
‘날으는 배우’로 불린 원조 스턴트맨의 시작

1943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난 김영인은 경기상고와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 하키와 럭비, 권투 등 다양한 운동을 섭렵하며 단련한 신체 능력은 훗날 영화 인생의 밑거름이 됐다. 대학 재학 중 무술에 심취한 김영인은 1961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5인의 해병’을 통해 충무로에 입문했고, 주연 배우들의 위험한 액션 장면을 대신 소화하며 ‘날으는 배우’라는 별칭을 얻었다.

영화사 연구자 공영민 씨는 해당 작품을 두고 한국 영화사에서 거의 최초의 스턴트 연기 사례라고 평가하며, 당시 전쟁 액션영화가 구현할 수 있는 기본적인 액션의 틀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분석했다.
400편이 넘는 필모그래피와 현장의 중심

김영인의 공식 배우 데뷔작은 1966년 영화 ‘불타는 청춘’이다. 이후 ‘어명’, ‘실록 김두한’, ‘동백꽃 신사’ 등 수많은 액션 영화에 출연하며 스크린 속 존재감을 쌓았다. 2000년대 이후에도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 ‘주먹이 운다’, ‘다찌마와 리’ 등에 출연하며 세대를 넘는 활동을 이어갔다.

약 400~500편에 이르는 작품에 참여했고, 200여 편에서는 무술 감독으로 액션 동작과 동선을 지도했다. 류승완 감독은 저서에서 “‘오사까 대부’에서 보여준 김영인의 마지막 대결 장면은 정말 근사했다”고 회고하며 현장에서 끝까지 몸을 던지는 배우의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공로로 김영인은 2006년 제43회 대종상영화제 특별연기상을 수상했다.
동명이인 해프닝 넘어 남은 이름의 무게

1980년대 이후 김영인은 TV 드라마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KBS 드라마 ‘무풍지대’에서 김두한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후 대하사극과 현대극을 오가며 묵직한 조연 연기를 이어갔다. 한국영화배우협회 상임이사로 활동하며 원로 배우들의 권익 보호에도 힘썼다.

별세 소식이 전해진 뒤 1952년생 동명이인 배우와 혼동하는 해프닝도 발생했으나, 1943년생 김영인은 한국 액션 영화의 초석을 다진 원조 스턴트맨이자 배우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김영인이 남긴 수많은 액션 장면과 현장의 기억은 한국 영화사가 축적해 온 몸의 역사로 오래도록 남을 전망이다.
김영인 별세 | 김영인 사망 원인 지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