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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상 사건 | 박한상 동생 존속살인범 꼬꼬무

by 핫피플나우 2025.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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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상 사건 | 박한상 동생 존속살인범 꼬꼬무

박한상 사건

 

오늘은 박한상 사건, 존속살해 패륜아 박한상, 살인범 꼬꼬무 등에 대해 알아보시죠. 

 

박한상 사건 존속살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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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상 사건

1994년 5월, 서울 강남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20대 장남이 부모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의 범인인 박한상은 부모가 자신의 방탕한 생활을 꾸짖고 빚 상환을 거부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계획했습니다.

 

사건 발생 후 경찰은 처음에는 단순 화재로 처리했으나, 부검 과정에서 시신에 40여 군데의 칼자국이 발견되면서 살인 사건으로 전환하여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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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상은 살해 직후 증거 인멸을 위해 집에 불을 지르고 샤워를 하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였지만,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 물어뜯은 다리의 잇자국과 머리에 묻은 혈흔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 결국 범행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범행 일체를 자백했고,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 사건은 부유층 가정에서 발생한 패륜 범죄라는 점에서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박한상 사건은 패륜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살인범 박한상 패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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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 박한상 패륜아

박한상은 1971년에 태어나 서울 강남의 부유한 가정에서 2남 중 장남으로 성장했습니다. 아버지는 한약재 유통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사업가였으며, 박한상은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편애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부모는 가업을 잇도록 한의대 진학을 바라며 명문고에 진학시켰으나 박한상은 학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불량한 생활을 일삼았습니다. 술, 담배, 도박, 폭력 등 각종 비행을 저지르며 문제를 일으켰고, 학교에서도 수차례 전학을 가는 등 불안정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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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 박한상 패륜아

그러다 3,700만 원에 달하는 도박 빚을 지게 되었고, 아버지에게 빚을 갚아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아들의 막장 생활을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빚 상환을 거부하며 "호적을 파서 나가라"고 꾸짖었습니다.

 

이로 인해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자, 박한상은 부모를 살해하여 1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상속받고 빚을 청산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박한상 수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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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상 수사 과정

박한상 사건의 수사는 처음부터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1994년 5월 19일, 박한상은 부모를 살해한 뒤 집에 불을 질러 증거를 인멸하려 했습니다.

 

수사 초기, 경찰은 사건 현장에 침입한 흔적이 없는 점을 들어 면식범의 소행으로 추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박한상 또한 수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친아들이 부모를 살해했을 리 없다"는 당시의 통념과 장례식에서 기절까지 하며 오열하는 박한상의 모습 때문에 경찰은 그를 쉽게 용의자로 단정 짓지 못했습니다.

 

박한상 수사 과정박한상 수사 과정박한상 수사 과정
박한상 수사 과정

그러다 여러 정황과 제보를 통해 박한상의 범행을 밝혀냈습니다. 당시 박한상에게 응급 처치를 했던 간호사가 그의 머리에 피가 묻어 있는데도 상처가 없었다고 증언했고, 친척은 그의 다리에 선명한 잇자국이 남아 있다고 제보했습니다.

 

이 잇자국은 살해당한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에 아들의 다리를 물어뜯은 흔적이었습니다. 이 결정적인 증거를 토대로 경찰이 추궁하자, 박한상은 결국 부모의 재산을 노리고 범행을 저지른 사실을 자백했습니다.

 

박한상 재판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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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상 재판 판결

박한상 사건의 재판은 사회적 공분을 샀던 만큼 엄격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존속살해, 방화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박한상은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고 "누군가 자신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주장하는 등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뻔뻔한 태도는 재판부의 감정을 상하게 했습니다. 당시 저명한 인권 변호사였던 황산성이 변호를 맡았으나 정신 나간 주장에 질려 3개월 만에 변호를 포기할 정도로 그의 반성 없는 태도는 변호사조차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박한상 재판 판결박한상 재판 판결박한상 재판 판결
박한상 재판 판결

법원은 동정의 여지가 전혀 없는 박한상에게 관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1994년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1995년 8월 25일, 대법원은 박한상에 대한 원심 판결을 확정하며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이 판결에 따라 그는 현재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 또한, 그가 탐냈던 부모의 재산은 민법 제1004조에 따라 모두 박한상의 동생에게 상속됐습니다.

 

박한상 근황 교도소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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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상 근황 교도소 보석

박한상은 사형수 신분으로 대구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가 된 덕분에 그는 현재까지 복역 중입니다.

 

2015년 언론을 통해 그의 근황이 공개되었는데, 그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6년간 상담했던 교화위원 양순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는 모두 거짓이며,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박한상 근황 교도소 보석박한상 근황 교도소 보석박한상 근황 교도소 보석
박한상 근황 교도소 보석

회고록에 따르면 박한상은 범행을 부인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으며, 옥중에서도 재산에 대한 집착을 보이며 다른 수형자들에게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 묻고 다녔다고 합니다.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가 된 점을 이용해 언젠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거나 가석방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민법에 따라 상속인이 될 수 없는 그는 수천만 원의 빚만 남아 있으며, 그의 범죄가 워낙 흉악한 점을 감안할 때 감형이나 가석방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이상 박한상 사건, 존속살해 패륜아 박한상, 살인범 꼬꼬무 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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