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별세 | 사망 원인 | 나이 | 부인 | 자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별세
향년 100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024년 12월 29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자택에서 호스피스 돌봄을 받던 중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 카터재단은 성명을 통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지미 카터 최장수 대통령 기록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2022년 10월 98세 생일을 맞으며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그의 수명은 아버지 부시(94년 171일), 제럴드 포드(93년 165일), 로널드 레이건(93년 120일)을 뛰어넘은 기록이다. 작년 2월 흑색종 재발로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 케어를 받아왔으며, 77년을 해로한 아내 로절린 여사는 지난해 96세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지미 카터 땅콩농부 출신
1924년 조지아주 플레인스에서 태어난 카터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잠수함 장교로 복무했다. 1953년 부친 별세 후 고향으로 돌아와 가업인 땅콩 농장을 이어받았다. '땅콩 농부'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그는 흑인 차별에 반대하는 인권운동가로도 활약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지미 카터 결혼 부인 자녀
지미 카터는 1946년에 로절린 여사와 결혼해 4명의 자식을 두었다. 2021년 7월 10일 결혼 75주년 기념식에서 평생 산전수전을 함께 겪어온 아내에게 “(결혼생활 내내 내게) 꼭 맞는 여성이 돼 줘서 특별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 당선
1976년 대선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공화당을 꺾고 당선된 지미 카터는 제39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재임 중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성사시켜 중동 평화의 기초를 마련했으나, 이란 인질 사태와 경제 침체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단임으로 끝난 첫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지미 카터 퇴임 ‘평화 외교’
지미 카터는 퇴임 후 카터센터를 설립해 국제 평화와 인권 신장을 위해 힘썼다. 1994년 북한 핵위기 때는 직접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하며 북미 협상의 물꼬를 텄다. 에티오피아, 수단, 아이티 등 분쟁 지역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중재자 역할을 했으며, 이러한 공로로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지미 카터 박정희 그리고 한반도 위기
지미 카터는 한반도와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한국의 인권 상황을 문제 삼아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이는 양국 관계에 긴장을 초래했다. 후일 회고록에서 1979년 한미정상회담을 "가장 불쾌한 토론" 중 하나로 회상했다. 그러나 1994년 북핵 위기 당시 방북하는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도 보였다.
지미 카터 봉사활동
지미 카턴는 퇴임 후에 ‘해비타트 프로젝트'를 통해 저소득층의 주거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그의 봉사 정신과 인도주의적 활동은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게 했다. 부인 로절린 여사와 함께한 77년간의 결혼 생활에서 4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마지막까지 가족들과 함께했다.
현재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장례식 추도사를 맡을 예정이며, 워싱턴 DC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국장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것을 했다"고 평가했으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더 낫고 공정한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추모했다.
이상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별세, 사망 원인, 부인, 자녀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